선거 때마다 수많은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똑같다. 하지만 미디어에 소개되는 건 ‘될 만한 후보’와 그들이 제시한 공약뿐이다. 지지율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거나 인지도가 약한 후보는 자신의 공약을 설명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군소정당 대선후보들의 경제 공약을 사안별로 모아본 이유다.
20대 대통령 선거엔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윤석열(국민의힘), 심상정(정의당), 안철수(국민의당) 등 4명의 대선후보만 출사표를 던진 게 아니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후보를 포함해 14명이 대선에 도전했다. 선거벽보 기호가 15번까지 나왔던 지난 19대 대선 다음으로 많은 후보가 나온 셈이다.
3억원의 기탁금을 내고 유효투표의 15% 이상을 득표해야 기탁금 전액(10~15% 미만이면 절반 반환)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거대정당을 등에 업지 않은 후보들이 ‘큰 도전’을 꾀한 건 분명하다.[※참고: 물론 몇몇은 본선 전 사퇴할 수 있다. 또 몇몇은 왜 출마했는지 진정성을 의심받고, 어떤 후보는 기탁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를 두고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다만, 경제공약을 점검하는 이 콘텐츠에선 이런 논란들은 다루지 않았다.]
군소정당 후보들의 공약 중에는 거대정당 후보들과 비슷한 공약도 있고, 이념이 분명해 다소 과격하거나 편향적인 공약도 있다. 때로는 실현 불가능할 정도의 황당한 공약들도 있다. 하지만 거대정당 후보들이 곱씹어볼 만한 공약도 없지 않다. 더스쿠프가 이들의 공약을 모아본 이유다.
공약은 경제 공약만 다뤘고, 각 주제별로 공약을 묶었다. 따라서 정치제도나 선거제도 개혁공약이 다수인 일부 후보의 공약은 상당 부분 빠졌다. 선언만 있고 내용이 없는 공약도 배제했다.[※참고: 공약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된 10대 공약을 기초로 삼았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의 공약은 Q&A 형식으로 별도로 다뤘기에 제외했다.]
■ 부동산(주택) 정책 = 부동산(주택) 관련 공약은 대부분의 후보들이 다뤘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주택 수급 불균형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후보들 모두 수급 불균형 해소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념에 따라 방향성은 달랐다.
진보 성향을 가진 후보들은 토지공개념을 전제로 민간의 택지 보유를 규제하고, 이를 통해 공공주택 혹은 공공임대주택을 건립하겠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들 공약이 추구하는 방향은 하나인데, 바로 집값 하향 안정화다.
토지세ㆍ탄소세ㆍ시민세 등을 도입해 이 재원으로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기치를 내건 오준호 기본소득당 후보는 ▲모든 민간 보유 토지에 공시가격 기준으로 토지세 부과 ▲공공임대주택 15% 달성 등을 공약으로 내놨다.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이었던 김재연 진보당 후보는 ▲민간이 일정 규모 이상의 택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택지소유상한제(법인은 택지 소유 원천금지) 도입 ▲규모 이상 토지 소유 시 토지초과이득세 부과 ▲초과 소유 택지의 공공 매입을 통한 공공주택 건설 ▲66㎡(약 20평) 1억원대, 99㎡(약 30평) 2억원대의 건설원가아파트 연간 10만호 공급 ▲지역별 장기공공임대주택 20% 의무화 ▲전월세 인상률 상시 규제와 평생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 ▲지역별 공정임대료 산정위원회 설치와 공정임대료 수시 고시 등을 공약에 담았다.
‘사회주의 실현’을 전면에 내세운 이백윤 노동당 후보는 ▲국가책임 공공주택 공급의무 법제화와 민간의 임대 금지 ▲공공주택 1000만호 공급 ▲1가구 2주택 소유금지 등 좀 더 강력한 규제책을 내놨다. 세 후보의 공약에는 ▲공공개발 시 토지임대부 분양 실시 ▲개발이익환수제 전면 추진이 공통적으로 담겼다.
진보 진영이 공공의 역할을 강조한 것과 달리 보수 진영은 작은 정부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강조했다. 김경재 신자유민주연합 후보는 ▲대규모 재개발과 재건축을 통한 민간주택 공급 ▲신도시 개발 억제 ▲서울 강북 등에서 용적률 2000~3000%로 상향 조정 등을, 이경희 통일한국당 후보는 ▲부동산 규제 완전 철폐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ㆍ계약갱신청구권제ㆍ전월세 상한제) 폐지를 주장했다.
■ 노동ㆍ일자리 정책 = 부동산 공약 못지않게 많이 거론된 경제 공약은 노동ㆍ일자리 분야에서 나왔다. 물론 진보 성향 후보들의 공약이 대부분이지만,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도 없지 않다.
진보 성향 후보들은 주로 노동권 강화와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등을 기초로 한 국가책임일자리 등을 강조했다.
오준호 기본소득당 후보는 ▲주3일 휴식제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 ▲유급휴가 연 15일에서 30일로 연장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 ▲고용보험 대신 모든 취업자에 적용 가능한 소득보험제도 도입으로 실업 시 소득대체율 70% 실현 등을 주장했다. 비정규직 노조활동가 출신인 이백윤 노동당 후보는 ▲국가책임일자리 1000만개 신설로 완전고용 실현 ▲저임금 노동ㆍ장시간 근무ㆍ고용 불안정 청산 ▲비정규직 철폐를 내세웠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는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노동 중심 자주평등공화국이다’는 내용 명시 ▲노동법에 ‘근로자’ 아닌 ‘노동자’ 명시 ▲모든 노동자의 직접ㆍ무기고용 ▲‘전국민 노동법’ 제정 통한 노동법 적용 사각지대 해소(5인 미만에도 적용) ▲국가고용책임제 실시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 실시 등을 제시했다.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는 취업부를 신설해 청년취업 국가책임제를 실시하겠다고 했고, 이경희 통일한국당 후보는 귀족노조의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노동환경 조성’을 위한 비정규직ㆍ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강조했다. 이념을 떠나 청년취업 문제와 비정규직 처우 개선 문제에는 많은 후보가 공감했다는 얘기다.
■ 복지 정책 = 복지 관련 공약 역시 진보 성향 후보들에게 집중돼 있었는데, 그들은 돌봄이나 의료 등 사회서비스의 공영화에 초점을 맞췄다.
오준호 기본소득당 후보는 ▲전국민 육아휴직 급여 최대 150만원 보장 ▲돌봄비용 국가부담 원칙 마련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각지대 해소(주거급여 지급 시 자기부담금 폐지) ▲공공병상 30% 구축 ▲건강보험 보장성 80% 달성 ▲전국민 디지털 기본권 구축(기본 데이터 5GB 제공) 등을 내세웠다.
이백윤 노동당 후보는 ▲읍면동 단위 공공가사돌봄센터 설립을 통한 국가책임 돌봄사회 실현 ▲돌봄ㆍ가사 노동자의 국가책임 직접고용 ▲각종 사회서비스 공영화(장애인 탈시설화 등) ▲어린이집과 요양시설의 국공립화 등을 주장했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는 ▲무상교육ㆍ무상의료ㆍ무상돌봄 실현 ▲장애인의 탈시설화 ▲유아보육과 교육을 교육부로 통합해 돌봄국가책임제 실현 ▲돌봄노동자 국가직접고용 등을 강조했다.
김경재 신자유민주연합 후보는 연금개혁을 강조했는데, 공무원ㆍ군인ㆍ교원ㆍ사학연금을 국민연금으로 통합해 관리하는 방안을 내놨다. 특히 연금수급자라도 소득이 있으면 연금을 수령하면서 계속 연금을 납입하도록 해 ‘지속가능한 연금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공약했다.
이경희 통일한국당 후보는 ▲육아휴직보장(최장 3년)과 급여 확대 ▲돌봄시스템 확충 ▲신생아 펀드 도입 ▲출산장려금 지급 등을 통해 출산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 기본소득 관련 정책 = 현재 가장 논쟁적인 이슈인 기본소득은 군소정당 후보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이슈였다. 이 때문에 복지정책과 별도로 떼어봤다.
오준호 기본소득당 후보는 토지세ㆍ탄소세ㆍ시민세 도입과 감면제도 정비 등을 통해 2026년까지 전국민에게 월 6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는 별도의 기본소득 공약은 없이 농민기본법 제정을 통한 농민수당(1인당 150만원) 지급을 제시했다.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는 ▲4000조원의 양적완화로 18세 이상에게 코로나 긴급생계지원금 1억원(1회) 지급 ▲매월 150만원의 국민배당금(평생) 지급 ▲출산 시 5000만원 지급 ▲육아수당 월 100만원 지급 ▲연애수당 20만원 지급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양적완화 외엔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없었다. 더구나 이런 공약을 내세우면서 각종 세금은 줄이겠다는 공약을 제시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주목할 만한 공약 = 군소정당 후보들은 거대정당 후보들이 주목하지 않은 이슈들도 다뤘는데, 개중에는 생각해볼 만한 공약들도 있다.
대표적인 게 김재연 진보당 후보의 ▲9900㎡(약 3000평) 농지 임대와 맞춤형 행정지원을 통한 청년농민 30만명 양성 ▲노점상 생계보호특별법 제정 등이다. 대선후보 가운데 농촌 활성화와 노점 살리기 관련 공약을 제시한 이는 김 후보가 유일하다.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의 공약들은 대부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발상은 과격함에도 ‘진영에 빠져 갑론을박만 거듭하는 금배지가 왜 필요한가’란 국민의 의문과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이백윤 노동당 후보의 청소년 노동3권(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 보장 공약도 마찬가지다. 이 공약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 과정에서 받는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거다. 이 후보의 다양한 노동 공약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공약에 상당부분 포함돼 있지만, 심 후보의 공약에도 청소년 노동3권 보장 공약은 담겨 있지 않다.
극우 진영에 가까운 조원진 우리공화당 후보의 공약은 대부분 현 정부의 기조와 배치되지만 국토균형발전 공약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조 후보는 ▲지자체 재정자립도 개선 ▲지방기업 규제 면제 등을 통한 국토균형발전 공약을 내놨는데, 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약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김민찬 한류연합당 후보가 제시한 “임신ㆍ출산ㆍ영유아 의료비를 전액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공약도 재원마련책만 고심한다면 살펴볼 만하다. 사안에 따라선 이념과 정당을 뛰어넘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공약이 얼마든지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군소정당 후보들이 당선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렇다고 이들이 내놓은 ‘참신한 공약’까지 사장돼선 안 된다. 군소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것 또한 차기 대통령의 몫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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